이세 히데코, 카사이 신페이의 원화전과 북토크를 다녀와서

얼마전에 카사이 신페이 작가와 이세 히데코 작가가 함께 작업한 두 권의 책, 그림책 『동생이 생긴 너에게』(원제: 『ねぇ,しってる?』)와 아직 번역본이 없는 『猫だもの』의 원화전과 북토크에 다녀왔다. 두 번째 책은 에세이 형식의 책이라 그림책은 아니지만 이세 히데코가 삽화를 그리고 글도 함께 썼다.

카사이 신페이 작가와 이세 히데코 작가가 함께 한 두 작품

자그마한 그림책 전문 서점에서 열린 원화전과 북토크

원화전과 북토크를 하는 곳은 도쿄 어느 동네의 자그마한 그림책 전문 서점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전철을 두 번을 갈아타고 한 시간 이상을 가야하는 곳이었다.

내린 역은 정말 작은 역이었다

지도를 따라 작고 아담한 사이즈의 책방에 도착했다. TEAL GREEN이라는 이름의 「차를 마실 수 있는 그림책 가게」 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그림책 전문 서점이다.

TEAL GREEN 서점의 입구
입구 옆에 서점 안이 들여다보이는 커다란 창문이 있다. 그림책 속 주인공들 소품이 보인다. 원화전을 하는 『동생이 생긴 너에게』의 표지도 보인다.
원화전은 2021년 4월 28일부터 6월 20일까지였다.
서점 입구에 놓은 『동생이 생긴 너에게』의 한 장면

입구에 『동생이 생긴 너에게』의 한 장면이 놓여 있어서 내가 제대로 온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작은 서점이었지만 국내외 그림책들로 꽉 차 있었고, 아는 그림책들도 많이 눈에 띄어 반가웠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나는 북토크 신청을 하고 온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처음부터 신청 인원을 10명 정도로 적게 받은 것도 있지만, 이세 히데코 작가가 워낙 일본에서도 유명한 작가여서 오래 전에 신청이 마감된 지 오래였다. 신청도 안 했으면서 나는 북토크 시작 시간에 맞춰서 무작정 한 번 가봤던 것이다.

괜히 계산대 근처 앞을 서성거리다가 누군가가 몸이 안 좋아서 취소를 했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혹시 남은 자리가 있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나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분이 있어서 그 분이 안내되었다. 그래도 포기 안하고 그림책을 훑어보며 서점 안에서 머물렀고, 기적처럼 또 자리가 한 개 남아서 서점 주인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시간 반 넘게 걸려서 간 내 정성이 통한 걸까? 아님 그냥 운이 너무 좋았던 걸까? 어쨌든 그렇게 기적적으로 나는 북토크에 참여할 수 있었다. 평소의 나 같으면 신청을 안 하고 무작정 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서점 주인에게 자리가 있냐고 묻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런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내가 너무 좋아하니 서점 주인도 같이 기뻐해줬다.ㅎㅎㅎ


프라이빗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두 작가의 호흡이 척척 맞는 토크

서점의 작은 갤러리 공간의 벽을 가득 채운 원화들에 둘러쌓여 두 작가의 북토크가 시작되었다. 두 작가와 10명 조금 넘는 인원의 참가자만 있는 공간은 매우 프라이빗하게 느껴졌다. 책의 작가들의 북토크는 처음인지라 나는 설레는 마음과 궁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특히 사진으로만 많이 봐왔던 이세 히데코 작가가 어떤 느낌일지 너무 궁금했다.

나만의 상상으로 굉장히 차분할 것 같다고 예상한 이세 히데코 작가는 밝고 좋은 의미로 말을 많이 하시는 작가였다.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토크에 작가의 그림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카사이 신페이 작가는 IT엔지니어로 평일에는 회사원으로 일하는 작가다. 나도 IT 업종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와서 그런지 일을 하면서 어딘가에서 봤을 것만 같은 카사이 신페이 작가가 친밀하게 느껴졌다. 카사이 작가의 토크를 듣다보니 영혼까지 맑은 작가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글이 나올 수 있는 것이구나 라고 납득했다.

카사이 신페이 작가와 이세 히데코 작가의 북토크는 마치 부모 자식 사이 같이 호흡이 척척 맞았다. 아니지, 정말로 부모 자식 사이였다면 그렇게 호흡이 척척 맞지는 않았겠지? 농담도 자주 주고 받으며, 서로의 사생활까지 정말 잘 아는 친한 관계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카사이 신페이는 이세 히데코의 친구의 아들로, 카사이 신페이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이다. 둘에게는 작가와 작가의 관계를 뛰어 넘어서 사생활에서도 친한 관계라는 것이 북토크를 통해 잘 전해져왔다. 이세 히데코 작가에게 카사이 신페이와 같은 나이의 딸이 있으니, 더 부모 자식 같은 분위기였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나도 카사이 신페이 작가와 같은 나이다. ㅎㅎ

카사이 신페이 작가(왼쪽)와 이세 히데코 작가(오른쪽)

당시 딸들과 손녀들 밖에 없었던 이세 히데코는, 2004년에 출간된 이세 히데코 글그림의 『絵描き』 와 그 후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청년은 카사이 신페이를 모델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북토크에서 만난 카사이 신페이 작가는 정말 『絵描き』와 『猫だもの』을 찢고 나온 듯, 의상의 느낌까지 비슷했다.


『동생이 생긴 너에게』 – 프로세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세 히데코 작가

먼저 『동생이 생긴 너에게』가 만들어지기까지의 토크로 시작되었다. 이 그림책의 키워드는 「だいじっこ」다. 이세 히데코 작가는 이 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모두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아이, 소중한 사람이다>라는 카사이 신페이 작가의 생각을 말과 그림으로 엮은 그림책이다.

『동생이 생긴 너에게』 앞 표지

이세 히데코 작가의 그림책이라면 부드럽고 잔잔한 수채화 풍의 그림이 떠오른다. 그런데 『동생이 생긴 너에게』는 이세 히데코 작가가 연필이 아닌 사인펜으로 좀 더 명확한 윤곽을 그리는 기법을 처음으로 도전한 그림책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인펜으로 그리지는 않았다.

작가는『동생이 생긴 너에게』를 그릴 당시에 오사다 히로시 작가의 시를 그림책으로 만든 『첫 번째 질문』을 동시에 그리고 있었다. 두 책 모두 아이가 등장하는데 자칫하면 비슷한 그림이 될 것 같아서 『동생이 생긴 너에게』는 화풍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세 히데코 작가는 사인펜을 선택했고, 그 전까지는 연필의 윤곽에 수채화를 사용한 터치가 중심이었던 작가는 새로운 기법에 도전하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습 끝에 『동생이 생긴 너에게』를 다른 화풍으로 그릴 수 있었다.

이세 히데코 작가는 『동생이 생긴 너에게』의 그림 작업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 우리가 익숙한 수채화 풍으로 그린 『동생이 생긴 너에게』의 그림들을 보여줬다. 그림책으로 완성된 그림들과는 전혀 다른 화풍이었다. 작가의 이런 그림들을 직접 볼 수 있다니… 나에게는 너무 설레이는 시간이었다.

이세 히데코 작가는 『동생이 생긴 너에게』와 『첫 번째 질문』의 그림을 같은 시기에 그렸다.
『첫 번째 질문』의 한 장면

오사다 히로시 작가의 시를 그림책으로 만든 『첫 번째 질문』의 그림들은 거의 윤곽이 없는 듯한 옅은 연필의 윤곽에 수채화로 표현해 부드럽고 잔잔한 느낌이라 마치 꿈 속에 있는 듯하다. 그에 비해 『동생이 생긴 너에게』의 그림은 윤곽이 뚜렷하다.

『동생이 생긴 너에게』의 장면들. 윤곽이 훨씬 뚜렷하고 색감도 밝다.

『동생이 생긴 너에게』는 독자인 아이들을 의식해서 아이들이 더 선호하는 선명한 윤곽인 사인펜을 선택했다. 이세 히데코 작가는 이 그림책은 새로운 생명인 동생이 태어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주인공의 성장 이야기이기에 등장인물이나 모티브 등 전체적으로 색을 밝게 표현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주요 독자인 『동생이 생긴 너에게』 는 선명한 윤곽, 어른들이 주요 독자인 『첫 번째 질문』은 부드러운 윤곽으로 표현해서, 그림책의 독자를 의식한 작가의 의도가 전해진다.


출처: 絵本作家61人のアトリエと道具 | 玄光社 (2017)

원화의 윤곽의 색을 결정하기 위해 6색 사인펜을 사용해 가장 작품에 맞는 것을 찾았다고 한다. 북토크에서 실제로 사용한 사이펜을 보여주기도 했다. 윤곽의 색도 목적에 따라 다른 색을 선택했다. 배경은 연한 사인펜으로, 인물이나 눈에 띄게 하고 싶은 모티브는 진한 사인펜으로 윤곽을 그렸다고 한다.

한 권의 그림책이 완성되기까지, 정말 많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세 히데코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 ‘이정도면 됐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편집자가 이제 그만 좀 그리라고 할 때까지 그림을 계속 그리고 또 그린다고 했다. 그림책이 거의 완성되었다고 생각될 즈음에 새로 다시 그리는 일도 있다고 했다.

북토크 중에 처음에 그리고 쓰여지지 않는 그림들을 버리는게 아깝지 않냐는 질문이 있었다. 이세 히데코 작가는 그 그림들이 있었기에, 나중의 그림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프로세스(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쓰이지 않은 그림들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했다. 북토크 중에 ‘프로세스(과정)’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했다. 이세 히데코는 한 권의 그림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프로세스’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다.

이세 히데코 작가의 ‘프로세스’에 관한 이야기는, 나의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어느 하나 쓸데없는 것이 없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과정이라고.


카사이 신페이 작가 자신의 이야기 『猫だもの』

『동생이 생긴 너에게』로 두 작가의 열정적인 토크가 계속되다보니, 두 번째 책에 대해 이야기 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猫だもの』는 그림책은 아니고, 이세 히데코 작가와 카사이 신페이 작가의 교환 일기/편지 형식으로, 4개의 에세이로 구성된 책이다. 이 책은 카사이 신페이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다. 카사이 신페이 작가는 우연히 ‘기타카루’ 고양이를 만나고 매일 느낀 것들을 쓴 노트를 어릴 때 부터 알고 지냈던 이세 히데코 작가에서 보냈고, 그것을 편집한 것이 2001~02년에 고양이에 관한 잡지 『猫びより(네코비요리)』에 연재로 4회 게재되었다. 책 전반부의 「키타카루 일지」(카사이 신페이)와 「신페이의 편지」(이세 히데코)는 연재를 고쳐서 수록한 것이다. 이세 히데코 작가가 그린 책의 삽화들도 연재하는 잡지에 실렸던 그림들이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르고, 2017년 5월, 두 사람의 그림책 『동생이 생긴 너에게』가 출간되었다. 이 두 사람이 보낸 15년의 시간을 「猫だもの(고양이인걸)」(카사이 신페이)과 「絵描きだもの(그림쟁이인걸)」(이세 히데코)라는 제목으로 새로 써서 책의 후반부에 담았다.

카사이 신페이 작가가 이세 히데코 작가에게 보낸 노트는 정말 말 그대로 노트였다. 나는 궁금해서 카사이 신페이 작가에게 저 노트를 보낼 때는 어떤 심정으로 보냈냐고 질문했다. 그 당시 이세 히데코 작가의 남편이 아팠고, 그 분을 즐거운 이야기로 위로하고 싶은 마음으로 보냈다고 했다. 카사이 신페이는 그 당시 마음이 따뜻한 청년이었고, 지금도 많이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청년과 길고양이 기타카루의 이야기.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는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세 히데코 작가는 개는 좋아하지만 고양이를 별로 안 좋아하다는 충격적 사실을 알았지만, 역시 그림 작가라서 그런가, 고양이의 모습과 행동은 실제 고양이를 꼭 닮았다.

주인공 청년과 주인공 고양이가 아닌 다른 고양이가 만나는 위의 장면이 너무 아름답다. 책으로는 가운데가 나뉘어지지만, 원화로는 한 장의 그림으로 보여서 훨씬 더 아름다웠다.


이세 히데코가 카사이 신페이를 응원하기위해 선물했다는 위의 그림은 카사이 신페이의 차와 그 것을 운전하고 있는 카사이 신페이를 그린 그림이다. 차의 앞쪽은 그림으로 꽉 차 있지만, 카사이 신페이가 후진을 하면서 바라보고 있는 뒷 쪽에는 여백이 많다. 카사이 신페이가 향하는 방향, 즉 미래는 카사이 신페이 자신이 그릴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다. 당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던 카사이 신페이였기에, 차가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후진을 하고 있는 것에도 의미가 담겨 있었다.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나는 저 여백을 의식하지도 못했는데…


북토크 후의 작가 싸인회

원화전에는 이세 히데코 작가의 다른 책들도 판매를 하고 있었다. 원화전을 하는 두 권의 책과, 이세 히데코 글그림의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를 구입했다. 구입한 세 권의 책과, 내가 가지고 간 『絵描き』를 포함 총 4 권의 책에 두 작가의 싸인을 받아왔다.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와 『絵描き』는 나를 위한 그림책이라 내 이름으로 싸인을 부탁했다. 『동생이 생긴 너에게』는 주인공이 딱 우리 아들 정도의 나이라서 아들의 이름으로 부탁했고, 『猫だもの』는 우리집 두 고양이 이름으로 부탁하는 등 꽤나 귀찮은 주문을 했는데, 두 분 다 흥쾌히 싸인을 해 주셨다. 그러고보니 남편 빼고 다 싸인을 받았네. ^^;;

『동생이 생긴 너에게』는 아들에게
『猫だもの』는 우리집 두 고양이에게

『猫だもの』의 책의 표지의 엽서와, 흔히 있을법한 일본 주택가 길에 서 있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담은 엽서 두 장도 함께 구입했다.

완성된 책만을 읽는 것과, 책을 만든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읽는 느낌은 너무나 달랐다. 앞으로도 작가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느꼈다.


작가 소개

<이세 히데코>

1949년 삿포로에서 태어나 13세까지 홋카이도에서 자랐다. 도쿄예술대학 졸업하였고, 프랑스에서 공부하였다. 동화 『마키의 그림일기』로 노마아동문예상을 받았고, 미야자와 겐지 작품 『수선월 4일』로 산케이아동출판문화상 미술상, 창작그림책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로 고단샤출판문화상 그림책상을 수상하였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구름의 전람회』,『나의 형, 빈센트』,『1000의 바람, 1000의 첼로』,『그림 그리는 사람』 등이 있다. 이 외에 그린 책으로 『자시키동자 이야기』,『쏙독새의 별』,『바람의 마타사부로』,『백조』 등 많은 작품이 있으며, 수필로는 『카잘스를 만나러 떠나는 여행』,『여행하는 화가, 파리에서 온 편지』 등을 출간하였다. 각지에서 그림책 원화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2007년에 파리에서 개최한 작품전은 크게 주목 받았다.


<카사이 신페이>

일본 동경에서 태어났으며 IT 엔지니어이자, 작가. 회사에 다니면서 블로그에 에세이를 쓰고 잡지 [네코비요리]에 고양이 기타가루의 이야기를 연재하는 등 창작 활동을 한다. 이번 책 『동생이 생긴 너에게』가 첫 그림책이다. (출처: yes24.com)


그림책 정보

『동생이 생긴 너에게』

글 : 카사이 신페이
그림 : 이세 히데코
역 : 황진희
출판사 : 천개의바람
발행 : 2018년
ISBN : 9788952782670
yes24 : http://www.yes24.com/Product/Goods/58153480
알라딘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1692000


『猫だもの』(원서)

글 : 카사이 신페이
그림 : 이세 히데코
출판사 : 平凡社
발행 : 2017년
ISBN : 9784582837667
yes24 : http://www.yes24.com/Product/Goods/50311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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