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난 기분이 드는 그림책

숀 탠의 『도착』을 소개한다. 원제는 『The Arrival』이다. 이주 경험을 주제로 한 이 그림책은 2007년에 볼로냐 라가치 특별상을 수상했다. 글없는 그림책인데 다 보고 나니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난 기분이 들었다. 136쪽의 그림책으로 굉장히 길다. 책도 큼지막해서 정말 많은 양의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숀 탠은 이 그림책의 그림을 그리는데 4년이 걸렸다고 한다.

숀 탠 작가는 국적과 목적지에 관계없이 가족과의 이별, 언어의 어려움, 향수병, 빈곤, 사회적 지위의 상실과 같은 모든 이주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많은 공통적인 문제들을 인식하고 그림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도착』은 호주로 이민와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작가가 이민자에 대해 연구하면서 알게 된 이야기가 합쳐진 결과물이다. 그 중에는 1960년대에 말레이시아에서 호주로 온 숀 탠의 아버지의 이야기도 있다.

우리는 종종 새로운 환경, 즉 새로운 학교, 직업, 관계 또는 국가에 새롭게 ‘소속’되어야 하는 경험을 한다. 새로운 환경은 누구에게나 낯설다. 어쩌면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그림책일 수도 있겠다.

작가는 글 없이 그림으로만 표현했을 때, 독자가 이민자들의 이야기에 공감이 더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 또한 이 그림책을 다 보고 난 후 숀 탠 작가의 생각에 동의했다. 당신은 어떤지?


『도착』앞 표지

표지에는 커다란 가방을 든 남자가 인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한 생명체를 신기한 듯 내려다보고 있다.

『도착』면지

면지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진?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살기 위해 지금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이주해야만 하는 사람들인 걸까? 한 사람 한 사람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겠지?


주인공은 부인과 딸을 뒤로 한 채, 낯선 땅으로 이주한다. 가족이 함께 가기에는 아직 여건이 되지 않는 듯 하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 처자식을 두고 떠나야 하는 주인공의 마음은 어떻고, 불안에 떨어야 하는 남겨진 가족의 마음은 또 어떨까.

새로운 곳에서는 언어, 동물, 음식, 집… 모든게 낯설다.

이주한 사람들에게는 반려 동물과 같은 존재가 한마리씩 주어진다(?). 사람마다 반려 동물의 생김새는 각기 다르다. 새 땅으로 이주를 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 것일까? 소통도 안되고, 낯설기만 한 땅에서 그나마 마음을 붙일 상대가 있어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 하나도 없어서 그림만 보고 있는데도 마치 글을 읽고 있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 다른 글 없는 그림책들도 많이 봤지만, 이렇게 한 페이지에 최대 12컷의 그림이 들어 있는 글 없는 그림책은 처음이다. 영화의 필름을 책에 옮겨 놓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계절이 변하고 시간이 간다는 것을 위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잎이 떨어지고… 낯선 모습의 식물이지만, 또 어딘가 익숙하기도 했다.

숀 탠의 많은 책들이 그러하듯, 그림들이 판타지적 요소가 강하다. 하지만 이주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처음 보고 경험하는 것들이 숀 탠의 그림만큼 낯설고 이상한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할 수 있을지 인터뷰를 하고 도장을 받는 장면에서 주인공의 표정이 너무 디테일하다. 손짓 발짓 다 해도 말이 안 통하는 것 같은 때의 답답함이 그림에서 그대로 전해졌다. 나도 미국과 일본이라는 타국에서 살면서 저럴 때가 있었지. 환장할 노릇.ㅎㅎㅎ

주인공은 자신처럼 이 땅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을 하나 둘 만난다. 다 각자 다양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살던 곳이 힘들어서, 더이상 그 곳에 살 수 없어서 새로운 삶을 찾아서 이 곳에 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책은 전체적으로 세피아 톤과 흑백 톤을 왔다 갔다 한다. 암울하고 무서운 장면들에서는 흑백으로 어둡게, 행복한 장면에서는 세피아 톤으로 밝게 표현했다. 같은 세피아 톤이라도 내용에 따라 밝기가 달랐다.

이주자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적응해 가면서 조금씩 웃음을 찾아간다. 위의 장면은 주인공이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가족을 만나 즐거운 저녁 시간을 함께 하는 시간을 표현했는데, 『도착』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따뜻한 느낌의 백열등이 켜져 있을 것만 같은 공간이다. 밝은 그림의 톤만큼, 사람들의 표정 또한 밝다.


어느 날 주인공에게 편지가 도착한다. 편지의 내용을 읽고 주인공은 환하게 웃는다. 무슨 내용의 편지였을까?

영화로도 충분히 제작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알고보니 연극으로 만들어져, 2010년 뉴질랜드 채프먼 트립 연극상에서 작품상, 연출상, 무대 미술상 등을 휩쓸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2012년에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 연극은 그림책과 마찬가지로 대사가 없는 마임극이다. 

“뉴질랜드서 온 동화같은 연극”이라는 제목으로 연극에 대해서 설명한 기사 링크를 첨부한다.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2/04/245660/

기사를 읽고 숀 탠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월E’의 컨셉트 아티스트로 활약했던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갑자기 숀 탠 작가가 엄청 친근하게 느껴진다. ^^


작가 소개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의 퍼스에서 자랐다. 십대 때부터 공상 과학 소설과 호러 이야기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대학에서 순수 회화와 영문학을 전공했다. 현재는 맬버른에 살며 작가, 무대 디자이너, 애니메이션 콘셉트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잃어버린 것』 『빨간 나무』 『도착』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여름의 규칙』 『매미』 등이 있다. 사회, 역사적 맥락 안에서 개인의 내면 풍경을 몽환적 이미지로 담아내는 그림책들로 꾸준한 호평을 받고 있다. 특별히 『도착』으로 2007년에 볼로냐 라가치 특별상을 받았고, 어린이 문학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수상하였다. (출처: yes24.com)


작가 홈페이지

http://www.shauntan.net


그림책 정보

글그림 : 숀 탠
출판사 : 사계절
발행 : 2008년
ISBN : 9788958282471
yes24 : http://www.yes24.com/Product/Goods/2814158
알라딘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99864

Please follow and like us: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