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한스 피셔 글그림

(또) 고양이 그림책을 소개한다. 이번에 소개할 그림책은 한스 피셔 글그림의 『피치』이다. 원제는 『Pitschi』로 1953년에 처음 발간된 스위스 작가의 그림책이다.

표지에는 커다란 보름달 앞에 턱시도 고양이가 한마리 앉아 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관심을 끌 수 있는 그림책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다른 고양이도 보이고, 강아지, 토끼, 부엉이, 닭 등 그림책에 등장하는 다른 동물들도 보인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언제나 다른 것이 되고 싶어하는 고양이.
슬프지만 아름답게 끝나는 이야기.

피치는 새끼 고양이 다섯마리 중에 가장 작은 고양이다. 다른 네마리 고양이들은 새끼 고양이스럽게 깨발랄 사고뭉치들이다. 하지만 피치는 조금 다르다. 고양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늘 따로 떨어져있다.

피치는 고양이로 살고 싶지 않다. 다른 게 되고 싶다.

닭을 만나고, 영양을 만나고, 다른 동물들을 만나지만 생각한 것보다 그 동물들의 삶이 별로였다. 오리 흉내를 내다가 물에 빠진 생쥐, 아니 고양이가 되고 만다. 오리 덕분에 겨우 물에서 나올 수 있었던 피치는, 토끼 가족을 따라 토끼 우리에서 밤을 보내게 된다. 리제테 할머니의 따뜻한 집 안의 푹신푹신한 바구니 속에서 생활하던 피치에게 집 밖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토끼 우리에는 무서운 여우와 부엉이가 찾아왔고 피치는 너무 무서웠다.

결국 피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워낙 몸이 약해던 피치는 오랫동안 젖은 몸으로 밖에 있었기에 그만 드러눕고 만다.

리제테 할머니와 모든 동물들의 극진한 병간호를 받으며 피치는 점점 기력을 회복해 나간다. 이불 위로 줄을 지어 피치를 문병오는 병아리들, 당근을 한 개씩 갖다 주는 토끼들, 자세히 보면 볼수록 동물들이 귀엽게 묘사되어 있다.

밖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몸이 회복된 피치를 위해 리제테 할머니와 모든 동물들이 정원에서 파티를 열어준다. 이 장면에는 글이 전혀 없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색을 많이 쓰지 않고 꼼꼼히 색을 칠하지도 않았는데 매우 아름답다. 동물들 하나 하나의 행동과 표정이 재밌어서 한참을 들여다보게 되는 장면이다.

피치는 결국 고양이로서의 자신의 삶이 가장 만족스러운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제는 고양이 이외에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

피치는 다른 동물이 부러웠던 것일까? 하지만 막상 그 동물의 삶을 살아보면 생각만큼 쉽지도 멋지지도 않았다.

우리들도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나의 현재 삶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남들의 삶이 더 좋아보여 그들을 부러워하고 따라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 좋아 보이는 삶을 쫓으려 했을 때, 그 안에 만족과 행복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피치가 자기 존재의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그림책이다. 더이상 다른 삶을 부러워하며 쫓지 않고 ‘나’로 존재함으로 충분히 행복한 피치가 조금 많이 부럽다.

작가 소개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몇 시간이고 동물이며 식물들을 스케치했던 피셔는 취리히의 아트 스쿨과 제네바의 에꼴 데 보자르에서 공부하면서 화가의 꿈을 키워 나갔다. 이때의 스승인 화가 클레는 피셔의 예술 감각과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클레의 영향을 받아 피셔는 세밀하고 꼼꼼한 묘사 대신 기본적인 선만으로 사물을 표현하는 화풍을 구축하게 되었다. 피셔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우표 디자인에도 참여했다. 그가 만든 《브레멘 음악대》며, 《피치》며, 《피치》의 후속편 격인 《생일》은 유럽 그림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미국 어린이들에게 소개되어, 유럽 그림책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출처: 알라딘)